![[여기 어때] 고성 화진포, 겨울의 끝자락 파도와 추억을···](http://images.khan.co.kr/article/2007/02/07/6a0882a-center.jpg)
겨울바다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여름 해수욕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해변에는 낭만이 넘실대고 푸르다 못해 시린 옥빛 바다를 마주하면 지나간 추억이 새롭다.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 해풍에 실려 온 파도소리가 귓전에 맴돌고 손에 잡힐 듯 아스라이 떠 있는 금구도(金龜島)가 바다 위에 몽롱하다. 겨울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시인이 된 듯 흥얼거리게 된다. 매몰찬 겨울바람에 눈물 콧물 다 흘러도 해변의 연인들은 마냥 즐겁다. 흰 눈을 머리에 얹은 백두대간 연봉과 호수를 등진 바다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황홀하다. 어디 그뿐인가. 제철 맞은 도치, 곰치, 양미리, 명태가 입맛을 돋워주니 이즈음 화진포는 그래서 좋다.
국내 최북단에 자리한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는 진부령을 넘는 게 지름길. 하지만 동해의 푸른 바다를 원 없이 만끽할 요량이라면 미시령을 넘어 속초에서 7번 국도를 따라가는 게 좋다. 속초시내에서 화진포까지는 1시간 거리. 백두대간 연봉을 따라 오른쪽 동해바다를 끼고 내달리는 해안도로는 곳곳이 비경이다.
토성면 청간리 바닷가에 자리한 청간정은 관동8경 중 하나.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정자다. 설악산에서 발원한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 정자에 서면 동해와 울산바위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교암리 해안 절벽에는 천학정이 있다. 1931년에 지어진 아담한 정자다. 연륜은 짧지만 해송 가득한 절벽 끝에 자리잡아 운치가 한결 돋보인다.
바다와 연결된 송지호를 지나 거진에 이르면 과거 명태잡이로 유명한 거진항을 만난다. 명태 주산지답게 철마다 별미음식이 다양하다. 거진항을 삥 둘러 형성된 횟집에 들르면 명태 아가미를 버무린 명태 서거리와 명란식혜, 도치두루치기 등을 맛볼 수 있어 여로가 즐겁다.
화진포는 여기서 10분 거리.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로 유명세를 탄 이후 고성의 명소가 된 지 오래다. 화진포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맑다. 게다가 수심이 비교적 얕아 가족 피서지로 안성맞춤.
길이 1.7㎞ 폭 70ｍ의 명사십리 백사장은 화강암과 조개 껍데기가 오랜 세월 풍화된 모나즈(monaz) 성분의 모래로 이뤄져 곤충이 살지 않는다. 아침햇살에 순백으로 빛나는 모래는 촉감도 부드럽다.
봄이 절정에 이르는 5월이면 인근 모래언덕을 붉게 뒤덮는 해당화는 ‘평사해당(平沙海棠)’이라 해 ‘화진포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손에 잡힐 듯 화진포 앞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금구도는 가을이면 섬의 대숲이 온통 노란 때깔을 띠어 붙여진 이름. 광개토대왕릉이라는 설이 있어 눈길을 줄 만하다.
화진포는 폭넓은 백사장과 긴 해안, 활시위를 힘껏 당긴 듯 휘어진 선형이 일품. 게다가 금강산, 무산, 향로봉, 마산, 신선봉 자락이 두 팔을 벌려 넉넉하게 품에 안 듯 포근한 형상이다.
화진포 앞바다를 한눈에 조망하기 좋은 곳이 바로 김일성 별장. 1948~1950년 한국전쟁 전까지 김일성이 가족과 함께 휴양지로 찾은 곳으로, 현재 안보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별장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빛바랜 사진이 걸려 있다. 맑은 날이면 북쪽 해금강이 눈에 들어 온다.
주차장 건너편 이기붕별장은 화진포 호숫가에 있다. 외국인 선교사의 휴양지로 지어진 후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했다.
이승만대통령별장 가는 길을 가다보면 화진포호(花津浦湖)를 만난다. 둘레 16㎞, 넓이 72만평의 화진포호는 남한의 자연호수 중 가장 넓다. 드넓은 갈대밭과 호수 위로 날아든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주변경관이 빼어나 예부터 수많은 시인문객들이 거쳐 갔다. 풍류시인 김삿갓도 이곳을 찾아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 전해진다.
호수 안쪽에 자리한 이승만대통령별장은 1954년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27평 단층 건물로 신축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헌사했다. 신축 별장은 1979년 박정희 전대통령도 쉬어갔다.
해질 무렵, 눈 속에 고요히 엎드린 산간마을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난다. 화진포 8경 중 하나인 ‘차동취연(次洞炊煙)’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고성|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