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경북 영주‘무섬마을’情 그리워 다리 뻗은 육지속 섬](http://images.khan.co.kr/article/2006/10/18/6a1982a.jpg)
이른 아침 햇살에 마을은 온통 황금빛이다. 운무가 걷힌 내성천 위 외나무다리가 절묘하다. 경북 영주시 ‘무섬마을’. 문수면 수도리(水島里)에 있는 전통마을이다.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우리말.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시에서 흘러나온 영주천이 몸을 섞어 동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끈으로 묶듯 휘돌아 흐른다. 마을은 그 안쪽에 똬리를 튼 형상이다. 이런 연유 때문일까. ‘육지의 섬’ 무섬마을에는 수백년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줄기 바람에 몸을 떨어뜨리는 낙엽만 봐도 마음이 허전해지는 요즘, 고향이 그립고 옛 추억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봄직한 곳이다.
무섬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 중반.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았다. 이후 예안 김씨가 들어와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현재 마을에는 40가구 46명이 살고 있다. 광복 후까지만 해도 120가구에 400명이 훨씬 넘은 적도 있지만 자꾸 도회지로 나가는 통에 한 집당 1명을 겨우 넘는 꼴이 됐다. 그나마 남아 있는 주민도 평균 연령이 74세에 이른다. 마을에서 ‘청년’으로 불리는 박찬우씨 나이는 57세. 최고령은 92세 할머니다.
가옥 중 30여동은 전통가옥이고,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마을 전체가 고택전시장인 셈. 이중 김규진가옥, 김위진가옥, 해우당고택, 만죽재고택 등 9점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와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면 예안 김씨 집안의 해우당을 비롯해 반남 박씨 입향조가 세운 만죽재, 고종 때 병조참판을 지냈던 박재연의 고택 등이 줄지어 나온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고샅길을 따라 호박넝쿨이 출렁이고, 마당에 고추와 호박을 말리는 모습도 정겹다.
국내에 전통가옥은 많지만 여기처럼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주민들이 사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절묘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태백산과 소백산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은 두개의 천(川)이 휘감아 돌아 외부로부터 고립돼왔다.
그러나 풍수지리학적으로는 매화꽃이 가지에 매달린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 형국의 길지 중 길지다. 조선시대의 난과 한국전쟁, 천재지변 등을 거치면서도 그 원형을 잃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믿고 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마을에 농사지을 땅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 때문에 주민들의 일과는 마을 앞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시작된다. 과거 이곳에 만들어진 외나무다리는 3개. 농사를 지으러 가는 다리와 학교로 가는 다리, 기차역으로 향하는 다리가 제각각이다.
기다란 대나무장대에 의지해 다리를 건너는 할아버지, 소고삐를 쥔 채 소풀을 지고 건너는 사람, 물동이를 이거나 새참거리를 지고 가는 아낙네,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아이, 말 타고 장가가는 새신랑, 꽃가마를 타고 시집오는 새색시, 황천길로 가는 상여도 어김없이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 불과 30여년 전 풍경이다.
하지만 장마 때면 둑까지 불어난 물에 다리는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은 그 때마다 다리를 새로 놓았다. 9월에 세워진 외나무다리는 4월께 뽑아진다. 300년 넘게 마을과 뭍을 이어준 외나무다리는 1979년 수도교가 세워진 이후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이를 아쉽게 생각한 마을사람들은 무섬마을보존회 김한세 회장(68)을 중심으로 외나무다리 복원을 결심했다. 지난해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베고 다듬어 만든 외나무다리는 폭 30㎝, 길이 150ｍ. 해마다 ‘외나무다리축제’도 연다.
지난 13일 열린 두번째 축제에서는 그 옛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재현했다.
무섬마을보존회 김한세 회장은 “무섬마을은 350년간 ‘봉제사 접빈객’의 정신을 이어온 전통마을로, 2008년 보수공사가 끝나면 옛 모습을 완벽하게 되찾게 된다”며 “그때는 이곳의 전통문화행사를 제대로 갖춰 외지로 나갔던 후손들을 불러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무섬마을을 조망하기 좋은 곳은 외나무다리 건너 마을 앞산. 산 정상에 오르면 내성천을 가로질러 고즈넉이 자리잡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질녘 주홍빛 노을이 마을을 감싸는 모습도 일품이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별리’라는 시로 아름다움을 노래한 곳이 바로 무섬마을이다.
〈영주 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