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참꼬막 본고장‘벌교’ 쫄깃 알큰한 속살 워메, 군침도네잉](http://images.khan.co.kr/article/2006/11/29/6a3082a-center.jpg)
바람 끝이 매섭다. 차갑고 메마른 겨울바람이다. 찬바람이 들면 손발이 바빠지는 곳이 전남 벌교. 남해안의 명물 ‘꼬막’이 제철을 맞기 때문이다. 작가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라고 꼬막을 표현했다. 그 꼬막이 바로 벌교산 ‘참꼬막’이다. 11월부터 채취에 들어가는 꼬막은 동지섣달부터 설날까지 맛이 절정에 오른다. 추울수록 살이 실하고 쫄깃한 것이 영양분도 가득 차기 때문이다. 물 빠진 여자만(汝自灣) 개펄은 바다의 평야. 그 위를 미끄러지듯 널배(뻘배)를 타고 꼬막을 훑는 모습도 이즈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보성과 순천 사이, 벌교읍 대포리 개펄은 꼬막이 지천이다. 여자만(순천만)을 파고드는 남해의 겨울바람에 속살을 키우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수라상에 오르는 8진미 중 으뜸으로 꼽혔던 꼬막은 밤톨만한 크기의 바닷조개. 벌교사람들이 즐겨 먹고, 해마다 이맘때면 참꼬막을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이가 적지 않다.
벌교는 작가 조정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이 때문에 벌교를 무대로 한 그의 작품 ‘태백산맥’에서는 이곳의 꼬막을 직·간접적으로 소개하는 대목이 간간이 눈에 띈다.
정하섭과 하룻밤을 보낸 소화는 아침거리로 꼬막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고, 외서댁을 범한 염상구는 그녀를 ‘쫄깃한 꼬막맛’에 비유한다. 또 무당 월녀는 ‘워메, 내 새끼 꼬막무치는 솜씨잠 보소, 저 반달걸은 인물에 손끝 엽렵허기가 요리 매시라운 니는 천상 타고난 여잔디’라며 딸 소화의 꼬막무침 솜씨를 칭찬한다.
전국에서 참꼬막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여자만 벌교와 보성만, 장흥, 강진 등. 이중에서도 벌교 것을 으뜸으로 쳐주는 것은 꼬막맛의 원천이 개펄에 있기 때문이다. 참꼬막은 모래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개펄에서만 난다. 벌교의 개펄이 그렇다. 청정해역의 깊고 차진 개펄에서 꼬막은 영양분을 빨아 살을 채운다.
대포리 정한식 이장은 “대포는 마을이 형성된 수백년 전부터 꼬막을 채취해 왔다”면서 “꼬막은 조금이라도 오염된 곳에서는 살 수 없어 청정해역의 대포산 참꼬막이 전국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했다.
‘참뻘’이라고 부르는 4000ha의 여자만 개펄은 꼬막을 채취할 수 있는 면적이 736ha. 장암, 대포, 장도 등의 개펄에서 생산되는 꼬막은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한해 20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아늑한 분위기의 대포리는 찬바람이 불면 분주해지는 곳. 머리에 수건을 둘러친 여인들이 질펀한 개펄에 널배를 타고 꼬막을 훑는 모습이 진경을 이룬다. 포구마다 널배에 가득 실려온 꼬막을 선별하는 작업장은 마치 골재채취장에 와 있는 것 같다.
꼬막은 다른 조개와 달리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전쟁 후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아이들은 꼬막을 간식이나 도시락처럼 들고 다니며 먹었다. 그 덕에 아이들은 골격이 튼튼해지고 건강하다는 게 대포리 주민들의 설명이다.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등 3가지. 껍데기에 파인 골과 크기로 구분한다. 껍데기 색이 엷고 솜털을 가진 새꼬막은 골이 없이 줄무늬만 있다. 새꼬막에 비해 3배 이상 큰 피꼬막은 말 그대로 속살에 핏빛이 돈다. 참꼬막은 골이 깊고 살은 탱탱하고 쫄깃쫄깃하다. 양식이 안되는 까닭에 값도 비싸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꼬막은 빛깔이 하얗고 무늬가 세로로 열을 지어 있다. 줄과 줄 사이에는 도랑이 있어 기와지붕 같다. 고기 살은 노랗고 맛이 달다’고 나온다.
꼬막은 신이 내린 개펄의 영양제.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골고루 함유돼 있다. 또 나이아신, 히스티딘, 타우린, 베타인 성분을 함유해 음주로 인한 간 해독에도 효능이 있다.
특히 비타민B 복합제로 B12, 철분, 코발트가 많아 여성이나 노약자들의 겨울철 보양식으로 제격이고 저혈압에도 좋아 자주 먹으면 혈색이 좋아진다. 겨울철 영양보충으로 그만인 셈.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는 법에 따라 효능이 천차만별이게 마련. 삶는 방법이 까다로운 꼬막은 더욱 그렇다.
꼬막은 우선 껍데기에 묻은 흙을 깨끗이 씻어낸 후 80~90도 물에서 데치듯 삶아야 한다. 꼬막은 끓는 물에 오래 삶으면 껍데기가 벌어져 영양분이 빠져나가고 맛도 질겨진다. 때문에 껍데기가 벌어지기 바로 직전까지 한쪽 방향으로 저어가며 2~3분간 살짝 끓이는 것이 비법이다.
꼬막을 양식처럼 먹어왔던 벌교사람들의 꼬막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감기 석달에 입맛은 소태 같아도 꼬막 맛은 변치 않는다’고 말할 정도. 널배에 몸을 싣고 꼬막을 훑는 대포리 주민들의 행렬은 봄이 오기 전까지 이어진다. 한겨울 혹독한 추위에 꼬막은 더욱 맛있게 속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벌교|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