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아이투어 올해로 3번째 장애인 19명에 감동선물
’자원봉사자·가이드 손길따라 2박3일 ‘꿈같은 나들이’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이국 정취속에서 자유·추억 만끽’
‘일본 속 네덜란드’로 불리는 하우스텐보스는 대규모 테마공원이다. 운하를 따라 조성해 놓은 풍차와 튤립, 운하와 유람선 등은 마치 네덜란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여행 후 한동안 시간이 흐르면 눈에 담아온 풍경보다 사람이 더 그리워지게 마련. 그래서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되새기는 감동이 달라진다. 지난 6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후쿠오카공항으로 향한 일본여행도 그중 하나다. 이른바 ‘장애인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동행’.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는 집밖을 나서기도 힘든 장애인 19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시각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 청각장애, 자폐성장애, 뇌병변 등 이들이 갖고 있는 장애는 천차만별. 해외는 물론 국내여행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다. 바깥 출입 자체가 ‘전쟁’이고 여행은 그저 ‘꿈’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이들과 동행한 가족과 자원봉사자, 가이드의 사랑과 배려 덕이다. 3박4일간의 ‘감동여행’은 그래서 가능했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동행’은 에프아이투어(구 여행박사)에서 마련한 ‘장애인에게 여행의 자유를’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 올해로 세번째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장애인 19명과 동반인 각 1명, 자원봉사자, 스태프 등 총 57명이 일본땅을 밟았다. 이들 대부분은 국내여행도 변변히 해보지 못한 장애인이다. 그래서 택한 여행지가 일본 규슈. 그중 나가사키는 장애인 관광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유명하다.
여행일정은 6~9일까지 나가사키와 구마모토, 오이타를 둘러보는 것. 생전 처음 나서는 여행 탓일까. 새벽 5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무려 8시간을 기다렸다는 김남석·장춘광씨는 피곤한 기색 대신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현실이 오히려 꿈만 같다고 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1시간20분 만에 도착한 곳은 일본 후쿠오카공항. 여기서 버스로 2시간30분 걸리는 나가사키가 첫 여행지다.
일본 규슈 북서쪽에 자리한 나가사키현은 1570년 개항 후 중국 및 서구와 다양한 문화를 교류해온 항구도시다. 이 때문에 도시 곳곳에 들어선 교회와 서양식건물, 중국식 사원 등이 이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일본 속 네덜란드’로 불리는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 ‘숲 속의 집’이라는 뜻)가 첫 방문지. 풍차와 튤립, 유럽풍 건물을 가로지르는 운하, 그 위로 유유히 흐르는 유람선 풍광은 영락없는 네덜란드다. 나가사키가 네덜란드에 첫 문호를 개방한 곳이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어 1992년 문을 열었다. 규모는 롯데월드의 14배.
해질 무렵 도착한 까닭에 본격적인 관광은 다음날로 미뤘지만 ‘동화 속 세상’ 같은 풍광을 마주한 이재희·송슬기양(지적장애)은 마냥 신났다. 때마침 열린 불꽃놀이 ‘드림 인 더 스카이’가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줬다.
이튿날, 새벽 단잠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관광에 나섰다. 여러 존(zone)으로 나누어진 하우스텐보스는 광활하다. 관광용 버스나 택시, 유람선을 타는 것이 상책. 하지만 가을햇살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걷는 맛도 쏠쏠하다.
풍차마을, 팰리스 하우스텐보스 등을 둘러본 뒤 어뮤즈먼트로 향했다. 네덜란드 역사에 기록된 대홍수를 체험하는 호라이존 어드벤처, 지구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IFX시어터 키라라 등은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테마영상물.
하우스텐보스 내 바로크식 정원에서 김형철·강미자 부부(사진 오른쪽)와 이지현·박한나 부부가 꽃을 감상하고 있다.
하우스텐보스의 상징인 톰트른 앞에 조성된 바로크식 정원이 가을햇살 아래 눈부시다. 이곳저곳에서 연방 셔터를 눌러대고 얼굴 가득한 미소가 꽃보다 화사하다. 시각장애인 김형철씨는 부인 강미자씨의 도움으로 꽃을 어루만진다.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촉각과 후각, 느낌만으로도 아름다운 풍광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뇌병변을 앓고 있는 이윤정씨도 손으로 ‘V’자를 그리고, 유독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이재희양은 ‘물 만난 고기’마냥 촬영이 한창이다. 경남 마산에서 올라온 이부옥씨(지체장애)는 마치 모델이 된 듯 카메라 앞에서 살포시 포즈를 잡는다. 그 누가 노래했던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우스텐보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향한 곳은 사세보.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고향인 이곳은 항구를 낀 젊음과 낭만의 도시다. 일찍이 미 해군기지가 들어선 까닭에 대접만한 크기의 햄버거와 208개의 섬이 명물.
점점이 흩어진 크고 작은 섬은 우리네 다도해를 보는 듯하다. 50분간 구쥬쿠시마(99개의 섬을 뜻하지만 ‘매우 많다’는 의미로 쓰임)를 둘러보는 펄퀸 유람선이 백미. 배 위에서 내려다 본 각양각색의 섬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유람선 관광을 마친 일행은 구라바 엔(글로버 공원)과 오우라 성당으로 향했다. 구라바 엔은 영국 상인 토마스 브레이크 글로버의 저택과 19세기 영국식 저택을 복원해 놓은 공원. 미나미야마테 언덕에 있다. 독특한 건축양식의 건물이 볼 만하다. 경사진 길에는 무빙워크(자동보도)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고, 턱이 없어 걷기에 지장이 없다. 장애인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감탄스럽다.
공원 정상 부근 글로버 저택 테라스에 오르면 나가사키 시내와 항구, 미쓰비시 조선소가 한눈에 잡힌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이곳에는 ‘나비부인’ 역을 맡았던 미우라 다마키의 동상이 서 있다.
오우라 성당은 구라바 엔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인 순교 성당’. 1597년 순교한 26명의 성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당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급 교회다.
아소산 분화구.
시마바라 츠쿠모 온천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맞이한 마지막 일정은 구마모토현에 위치한 아소산과 오이타현의 유후인마을. 오션페리를 타고 간다. 해발 1592m의 아소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가 있다. 아소산 아래에 자리한 고메즈카는 아소의 신이 수확한 쌀을 쌓아둔 것이 언덕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생긴 모양새가 꼭 제주도의 오름 같다.
분연(噴煙)을 쉼 없이 뿜어대는 나카다케 분화구는 세계 최대의 칼데라 화산.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분화구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기세다. 오이타현의 중앙부에 위치한 유후인마을은 온천이 유명하다. 산자락에 오밀조밀 들어앉은 아담한 가옥이 정겹다. 골목을 가득 메운 상점은 예쁘게 포장돼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마을청년회에서 운영하는 인력거와 민예촌도 색다른 볼거리. 오랜 전통과 자부심을 가진 료칸(일본 전통여관)은 호텔시설 못지않다. 휠체어를 탄 채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이번 여행에 참여한 장애인은 지금껏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자신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준 가족과 자원봉사자, 가이드의 헌신적인 노력이 그래서 더욱 고맙다.
“휠체어는 ‘장애의 상징’이 아닌 여행에 필요한 ‘여권’과 같은 것이다.” 일본의 여행디자이너 오소도 마사코의 말이 새삼 실감난다.
<규슈(일본) |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여행사이드1>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까지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매일 2편을 운행하고 일본항공은 아시아나와 코드셰어로 운행한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까지는 버스로 2시간30분 거리.
▶둘러볼 곳:나가사키-역사문화박물관, 공자묘, 평화공원, 원폭 자료관, 차이나타운, 데지마, 이나사야마 전망대 등. 구마모토-아소산, 구마모토성 천수각, 스이젠지공원, 다쯔다자연공원, 키쿠치계곡, 아소 곰목장 등. 오이타-뱃푸온천, 히가시시이야폭포, 후코지마애불, 나카쓰 성, 마메다마치, 아오노도몬 동굴, 센트레저 키지마코겐 파크 등.
▶먹을거리:나가사키는 짬뽕과 사라우동, 카스텔라가 명물. 짬뽕은 차이나타운인 ‘신치’에서 즐길 수 있다. 일본 카스텔라는 달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 후쿠사야, 분메이도, 쇼오켄 등이 나가사키의 3대 카스텔라 업체다.
▶쇼핑:나가사키에서는 역 인근에 자리한 아유프라자를 이용하면 된다. 후쿠오카의 다이아몬드 쇼핑몰도 이용해 볼 만하다. 백화점 스타일의 쇼핑몰은 다 둘러보는데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다.
▶숙박:나가사키 젠니크호텔(0956-58-7111), 시마바라 츠쿠모 온천호텔(0957-62-3111), 오이타 야도야 온천호텔(0977-28-2800) 등
▶문의:여행박사 에프아이투어 (070)7017-2100
<여행사이드2> 미니 인터뷰
이번 여행길에 나선 장애인은 저마다 구구절절 사연이 많다. 장애인수기공모에 당첨될 정도니 그 사연인들 오죽하랴.
유후인마을의 야도야 료칸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김남석씨
레슬링선수 출신의 김남석씨(29·지체1급)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당한 사고로 전동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중도장애인. 그는 이번 여행길에서 부안 장애인종합복지관을 통해 만난 장춘광씨(28·지체1급)와 의형제를 맺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홀로서기가 힘든 장춘광씨는 김남석씨의 휠체어 손잡이를 의지한 채 여행길 내내 함께 했다.
20대 중반에 걸린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20년 넘게 집안에만 갇혀 살다 2년 전 수술을 통해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된 김주혜씨(49·지체1급)는 “수술 전에는 여행은커녕 집밖 출입도 할 수 없었다”며 “여행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낯설었는데 이렇게 해외여행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소감을 토로했다.
참가자 중에는 이번 여행이 ‘뒤늦은 신혼여행’인 부부도 두 커플이나 됐다. 김상록(51·지체3급)·방선자(47·청각2급), 김현우(37·지체1급)·오영자(36) 부부가 그 주인공. 장애 때문에 결혼을 하고도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던 이들은 이번 여행이 뒤늦게나마 경험하는 신혼여행인 셈. 출국을 하루 앞둔 8일 저녁, 유후인 야도야 료칸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밝힌 이들은 결혼 26년과 11년 만에 이뤄진 신혼여행을 ‘감동의 눈물’로 자축했다.
<여행사이드3> 옥에 티, 장애인 배려없는 대한항공 ‘여행 장애’
이번 일본여행길에는 왕복 비행기편 모두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아무래도 일본항공보다는 의사소통이 원활한 국적기가 편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달랐다. 늘어진 출국 수속에 그만큼 대기시간이 길어져 몸이 불편한 장애인으로서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장애인은 탑승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까닭에 일반인에 앞서 우선탑승을 하는 것이 통상적인 예다. 일반인보다 20분 앞당긴 낮 12시10분에 탑승하려 했지만 이마저 지체돼 결국 12시30분 일반인과 함께 탑승했다.
후쿠오카공항에서는 더욱 가관이었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탑승구까지 가려했지만 대한항공 측 직원이 일반휠체어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 전동휠체어는 짐으로 분류되지만 탑승 전까지 이용할 수 있는 배려가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일본을 내 집처럼 오가는 한 가이드는 “일본항공이라면 최소한 이런 경우는 없었을 것”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