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시작부터 기나긴 슬럼프
김감독 인내의 기다림 ‘특별대우’
5월 들어 기량 회복 화려한 부활쇼
두산 고영민은 2002년 데뷔 이후 3년을 2군에서 주로 뛰었다. 그는 3박자(공격·수비·주루)를 갖춘 ‘2군의 이종범’으로 불렸다. 2군 경기 중 바운드볼을 때려 안타를 만들어낸 장면은 고영민을 매우 유명하게 만들었다. ‘정말 못 말릴 타자’라는 칭찬이 줄을 이었다. 2006년부터는 두산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국가대표팀 주전 2루수로까지 성장했다. 타자에 따라 수비 위치를 매우 깊게 잡아 ‘2익수’라는 명성을 얻었다. 각 팀의 2루수들이 고영민을 따라 수비 위치를 뒤로 옮기는 현상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올시즌 초반 힘이 부쳤다. 지난 2년간을 거의 빠짐없이 출전했고 겨우내 대표팀을 오가며 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즌 초반 너무 안 맞았다. 4월에만 24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1푼8리에 삼진을 26개나 당했다.
△강한 자아
![[야구 IN]두산 고영민, 뚝심으로 믿음으로…](http://images.khan.co.kr/article/2008/06/02/20080603.02500106000004.01M.jpg)
야구가 잘 안 될 때는 남의 말을 듣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영민은 예의바른 청년이지만 야구에 대해서는 주관이 강한 편이다.
그는 전형적인 ‘노려치기 스타일’이다. 2스트라이크 상황에도 변화구가 올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변화구에 타격 타이밍을 맞추는 타자가 고영민이다. 보통은 볼카운트가 불리하면 직구 타이밍을 기다리고, 예상이 맞지 않아 변화구가 들어오면 배팅 기술로 이를 대비하는 방법을 택한다.
결국 슬럼프를 빠져나오는 것도 고영민의 몫이었다.
△고민과 그 결과
두산 김경문 감독에게는 ‘황태자’가 없다. “과거에 했던 건 중요하지 않다. 감독은 현재를 본다”는 게 김감독의 지론이다. 물론 고영민에 대해서도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를 꾸준히 3번 타자로 기용하는 뚝심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영민은 결과적으로 ‘특별 대우’를 받았다. 김감독은 고영민 스스로 슬럼프를 극복하기를 기다렸다.
김감독은 고영민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트레이드를 고려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 두산의 젊은 투수들을 요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트레이드가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자 고영민을 2군으로 보내는 방법을 고려했다. 하지만 이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고영민을 3번타자 자리에서 빼면 팀 타순의 전면적인 조정이 불가피했다. 김감독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팀을 틀지 못했다.
게다가 그를 대체할 선수가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 마치 화수분 같다는 두산에도 ‘고영민 대체재’는 부족했다.
김감독은 “(고영민이 빠지면) 정원석이 메워야 하는데 이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감독이 대표팀을 맡으면서 고영민을 쭉 지켜봐왔던 것도 고영민에게 도움이 됐다. 지독한 연습벌레인 고영민이기에 4월의 슬럼프는 부상(종아리)과 힘든 일정이 겹쳐 생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고영민은 5월에 살아났다. 24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4푼9리(86타수 30안타), 3홈런 23타점에 장타율 5할2푼3리·출루율 4할4푼8리를 기록했다. 시즌 초반 1할대였던 타율도 2일 현재 2할8푼1리까지 끌어올렸다. 기다림의 결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