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훈련. 보통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진행된다.

지난달 22일부터 경남 진주시 연암공대 야구장에서 마무리훈련을 하고 있는 LG도 마찬가지다. 투수는 최원호(35)·이승호(32)를 제외하면 고참급이라고 할 만한 선수가 없고, 야수 중에는 권용관(32) 정도가 눈에 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970년생으로 마흔을 바라보는 포수 김정민(38)은 고참을 넘어 ‘원로급’ 수준이다.

그렇다고 김정민이 자원 입대하는 심정으로 비장하게 마무리훈련지로 떠난 것은 아니다.

LG 김재박 감독은 마무리훈련 참가 선수명단에 김정민을 포함시켰고, 김정민은 평소 성실한 자세 그대로 감독의 뜻을 따라 훈련지로 몸을 던졌다.

훈련 시작 뒤 2주 정도를 보낸 김정민은 3일밤 ‘스포츠칸’과의 전화통화에서 “참 많이 하고 있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가 전하는 ‘LG의 지옥훈련기’를 들어보면 내년에는 진짜 뭔가 만들어질 듯도 하다.

△억울함, 그 억울함으로

김정민은 “억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뒤 선수들 미팅에서 최고참으로서 던졌던 말을 소개했다.

“나는 이해가 안간다. 우리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허무하게 시즌을 보내야했는지.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LG는 지난해 가을과 겨울도 뜨겁게 보냈다.

당시 코치연수 도중 선수로 복귀해 호주 시드니 마무리캠프에 참가했던 김정민은 “그때 팀훈련량을 보면 김성근 감독이 계실 때와 별반 차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만큼 많이 했고 땀을 흘렸는 데도 페넌트레이스 경쟁에서 너무 빨리 처지면서 다들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돌이켰다.

훈련량만 따지면 지난해와 다를 게 없다.

아침 8시30분께 시작해 숙소로 돌아오면 공중파 9시 정규뉴스의 마지막 순서인 날씨 소식도 보기 힘들 정도로 훈련시간이 길다.

김정민은 “양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훨씬 혹독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만 해도 다들 힘들다고는 했지만 훈련 끝나고 유니폼이 흙으로 엉망이 되거나 옷이 상해서 들어오는 선수는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훈련 끝날 무렵이면 대부분 선수들 유니폼이 흙 투성이가 된다. 멀쩡한 상태로 훈련을 마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그라운드에 구르고 넘어지기를 거듭하는 훈련 내용을 펼쳐놨다.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쳐주는 펑고 양이 늘었고, 강도 또한 세졌다. 이를 받는 선수들도 다른 마음가짐으로 움직이고 있다.

김정민은 “이번 훈련을 통해 젊은 선수들 중에 내년에 좋은 역할을 할 선수들이 꼭 튀어나올 것으로 믿는다”며 자신도 최고참으로서 분위기 조성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마무리훈련을 통해 뜻밖에 전력에 보탬이 될 선수가 2~3명만 튀어나와도 대성공이다. 김정민은 흘리고 있는 땀 양으로는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보고 있다.

△비장해진 김재박 감독

LG 김재박 감독은 보통은 뒤에서 차분하게 지켜보는 스타일이다. 올해 팀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도 선수들을 다그치거나 계산된 액션으로 계기 만들기에 열중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시즌을 보냈다.

이번 마무리훈련에서는 김 감독이 선수 미팅에 자주 나서고 있다.

김정민은 “감독님이 이번 훈련에서는 미팅에서 선수들에게 ‘위기의식’을 가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고 말했다. 미팅을 직접 주재하거나, 참가하더라도 긴장감을 유도하는 멘트를 꺼내는 편이 아니었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

김정민은 “아마도 선수들이 절박한 심정을 갖고 뛰도록 유도하시는 것 같고, 선수들도 지금 상황을 잘 이해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은 내년 후반기쯤 올해 마무리훈련 얘기를 한번쯤 자랑스럽게 꺼낼 기회가 있기를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