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매너.’ 같은 화두인데 바라보는 시각은 각양각색이다. 조금 과장하면 열가지 질문에 열가지 대답쯤 나온다. 시즌마다 감초처럼 섞이는 빈볼문제와 감정싸움은 결국 불문율로 통하는 야구 매너 문제에서 비롯된다. 상대가 먼저 깼으니 마땅히 대응하겠다는 식이다. 지난주 프로야구판을 달궜던 ‘SK 윤길현 문제’의 시작도 매너에 대한 시각차에서 출발했다.

이에 대한 논란이 식었다 싶으면 다시 뜨거워지곤 하는데, 그 시행착오만큼은 개념 정리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한쪽에서는 국내야구 나름의 스타일을 강조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야구 세계화라는 차원에서 메이저리그 방식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어린 선수가 일반화된 상황 이해를 하고 플레이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형편이다.

#빈볼은 최종 결과물

늘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빈볼 시비다. 이어 벌어지는 벤치 클리어링과 몸싸움이 화젯거리로 뒤따른다.

그러나 몇가지로 요약되는 매너 문제가 이런 결과물의 배경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점수차가 어느 정도 벌어졌을 때 도루하면 상대편에 실례가 되는지의 문제와 홈런 또는 안타를 치고 너무 좋아한 나머지 상대를 자극하는 문제, 더불어 1루수가 베이스를 떠나 수비하며 경기 포기 의사를 알렸음에도 도루가 나와 신경전으로 번지는 문제 등이 주요 논란거리다.

#지금 도루해도 될까요

6회를 넘어가 스코어가 6~7점차 이상으로 벌어지면 도루하지 않는 게 야구 불문율로 통한다. 매너 논란 가운데 그나마 이견이 없는 부분이지만 이를 두고도 해석은 분분하다.

최근에는 크게 리드하는 팀이 도루하는 경우보다 크게 지고 있는 팀이 도루한 상황을 두고 말이 많았다.

특히 용병투수들이 자주 거론하는 부분이다. 8-0이나 9-0으로 크게 앞서는 경기. 보통 야수들은 도루에 대비하지 않는데 무방비 상태에서 도루하는 것은 비신사적이라는 주장이다.

한 코치는 “투수 입장에서는 완봉이 사실상의 무관심 도루로 깨지는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며 “메이저리그에서 노히트노런으로 경기 후반을 맞은 투수를 상대로 세이프티 번트로 기록을 깨는 행위와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용병투수들 열 중 아홉은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불문율의 원조 격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따금 다른 시각을 보이는 지도자가 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코치연수 중인 유지현 전 LG 코치는 “대부분이 이해하는 원칙이지만 여기서도 가끔은 지고 있을 때 ‘상관하지 말고 뛰라’는 감독도 있기는 있다”며 미국야구의 이면을 소개했다.

#1루수 뒤로 빠집니다

1루수가 1루에 주자를 두고도 베이스를 포기하고 2루수 쪽에 가깝게 나온 상황. 사실상의 경기 포기를 의미한다.

한 코치는 “1루수가 1루를 포기하고 나온 것은 아웃카운트를 빨리 잡고 경기를 끝내고 싶다는 의사다. 그런데 1루수는 그렇게 움직여놓고 투수교체를 활발히 하면서 다른 쪽에서 쫓아가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을 보고 이해되지 않았다”며 최근 한 팀의 플레이를 아쉬워했다.

그러면 1루수의 위치 변화는 어느 정도 포기 의사를 알린 것일까. 이에 대한 시각차도 이따금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홈런 쳐서 좋습니다만

홈런을 친 뒤 화려한 세리머니. 그리고 다음타자에게 날아오는 몸에 맞는 볼.

국내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나 일본야구에 비해 이런 순서의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그에 대해 널리 이해하는 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메이저리그는 원정경기에선 홈런을 쳐도 비교적 점잖게 세리머니를 하는 게 불문율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일본야구는 선수들의 성향 때문에 세리머니도 얌전한 편이라고 한다. 일본통인 삼성 선동열 감독은 “메이저리그는 메이저리그이고, 일본야구는 동양문화권이라 그런지 국내야구와 큰 차이가 없다”며 “다만 세리머니를 오버해서 하는 경우는 드문데 불문율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런 성향을 가진 선수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구(死球)…괜찮으신가요(謝過)

리그별로 가장 분명한 선이 그어지는 부분이다. 메이저리그에는 없다. 몸에 맞는 볼 뒤 사과는 뒤따르지 않는다.

선감독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투수로 4년을 뛰는 동안 어땠을까. 선감독은 대답을 대신해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타자에게 손짓 등으로 가볍게 사인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국내프로야구에서는 이 문제가 선후배 의식과 맞물리면서 다른 각도로 풀린다. 치열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구가 나온 뒤에는 가벼운 사과 표시를 했으면 하는 게 선수들, 그 가운데서도 타자들의 목소리다. 선수협을 통해 이 문제가 이따금 논의되기도 했다. 그런데 각자 팀으로 돌아가면 팀 형편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는 게 선수들의 말이다.

한 고참선수는 “선수들끼리 방향을 정해도 팀으로 돌아가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그럴 때는 아예 방향을 잡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코치별로, 감독별로 모두 생각이 달라서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공감대 형성은 어떻게

감독자 회의가 최선의 대화 통로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이 문제의 정답은 없다. 또 명문화할 수도 없지만 잦은 감독자 회의를 통해 이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해도 매너 시비로 촉발되는 불상사는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메이저리그처럼 구단이 30개나 되는 것도 아니다. 8개구단 사령탑이 허심탄회하게 자리를 만들면 감독들의 말문도 열리고 귀도 열리지 않을까.

<안승호기자 si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