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순지는 찰나와도 같은 청춘의 한때를 영원처럼 기억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 ‘불꽃놀이 아래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한여름 밤 불꽃놀이처럼, 청춘은, 혹은 첫사랑은, 한순간 빛났다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이 순지는 그 불꽃을 한없이 붙잡아두는 방법을 안다. 흰 눈 위에, 빨간 우산위로 떨어지는 봄비 속에, 눈처럼 대기를 채우는 벚꽃과 함께, 이와이 순지는 모두가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을 마법처럼 불러내곤 한다. 그의 신작 ‘하나와 앨리스’도 가장 빛나는 시절이어야 마땅할 열일곱 살의 세 계절을 유영하는 영화다. 파릇한 아이들이 어둠처럼 죽어가는 전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쌍둥이처럼 닮은 이 영화도 거짓말로 시작되지만, 그 거짓말은 언젠가 마주해야할 현실로 이어지는 탓에, 귀엽고 서글프다.
하나와 앨리스는 단짝친구다. 추운 겨울날 전철역에서 미소년 미야모토를 보고 반한 하나는 그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아직 고백도 하지 못한 하나는 몰래 미야모토를 쫓아가다가 그가 차고 문에 부딪쳐 기절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미야모토에게, 하나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거짓말을 한다. “선배, 기억 안 나요? 나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하나는 시작된 적도 없는 연애의 추억을 만들기 시작하려는 것. 그런데, 미야모토의 대답은 “나는 아직도 앨리스를 좋아하나봐”.
‘하나와 앨리스’는 신기할 정도로 단순한 이와이 순지의 중편 ‘4월 이야기’처럼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다. 그러나 담채화처럼 청춘을 붓질하는 이와이 순지의 카메라 앞에서, 거짓으로 시작된 데이트는, 녹색과 분홍색과 바다색 사이를 떠돌면서, 기억하지 못해도 느낌으로는 남을 진짜 첫사랑이 되어간다.
이와이 순지는 이 영화를 위해 직접 음악을 작곡했다. 그 음악이 가장 생기 있는 순간은 흰 발레복을 입은 소녀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몰려다닐 때, 그리고 CF 오디션을 보러간 앨리스가 혼자 발레를 할 때다. 긴 머리를 묶고 토슈즈 대신 종이컵을 발끝에 묶은 앨리스. 첫사랑이 자신에게 무엇이었는지 깨달은 그 아이가 너울처럼 길고 부드러운 팔과 다리로 곡선을 그려가는 5분은 청춘의 기적을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와이 순지의 영화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이야기야”라고 옮기는 건 소용없다. 몸으로, 마음으로 남아야 한다.
〈스포츠칸/김현정(영화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