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면서도 우아한 질감의 흑백 화면속의 쇠락한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 웨버의 테마 음악과 함께 극장 안 샹들리에가 천장으로 올라가고 회색 톤의 무대 배경이 황금색으로 물들자, 1870년 전성기 시절의 무대 모습이 새롭게 태어난다. 스태프들은 뮤지컬 준비로 분주하고 단원들은 리허설 준비에 열심이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이렇게 화려하게 그 막을 올린다.
뮤지컬 ‘한니발’ 의 리허설 도중 무대 장치가 무너지는 원인 모를 사고가 발생하고 프리마돈나는 화가 나서 극장을 나가 버린다. 대타로 나서게 된 무명 배우 크리스틴 다에(에미 로섬). 영혼을 울리는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 덕분에 공연은 성공리에 마치고, 그 순간 자신에게 음악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오페라의 유령’(제라드 버틀러)에게 이끌려 지하 공간으로 내려간다. 주연 배우의 실종에 극단의 후원자이자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젊은 귀족 샤니 백작(패트릭 윌슨)은 안절부절 못한다. 크리스틴을 동시에 사랑하는 두 남자. 한 사람은 달콤한 노래로, 다른 한 사람은 사랑의 맹세로 여자의 마음을 훔치려 한다.
영화는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편이다. 전체적 줄거리뿐만 아니라 작은 에피소드들 또한 원작 뮤지컬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면 뒤에 숨은 진실, 크리스틴을 향한 유령의 사랑과 음악적 열정, 사랑의 키스를 지켜봐야 하는 남자의 질투 등이 그대로 재현됐다. 여기에 극 진행에 맞춰 대사를 노래로 표현해 마치 뮤지컬 공연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원작이 유령의 사랑과 욕망을 다룬 멜로와 의문의 사건을 더듬어가는 스릴러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미술과 의상 면에서 맘껏 호사스런 상상력을 발휘한 비쥬얼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1억 달러를 쏟아 부은 빛과 예술의 향연은 원작보다 더 크고 웅장하다. 시각적인 볼거리만큼만 놓고 보면 전율이 느껴진다. 감미로운 선율과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멜로디는 자연스런 몰입을 자극한다.
하지만 대사의 대부분이 노래로 처리되는 뮤지컬의 호흡을 그대로 옮겨온 탓에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은 길고 지루하다. 특히 지하 세계에서 샤니 백작과 크리스틴 앞에서 사랑을 애걸하는 유령의 대사는 그 긴박감을 생각하면 오페라처럼 노래를 이용하는 방식이 다소 어색해 보인다.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등 뮤지컬의 마이더스라 불리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제작을 맡아 영화화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배트맨 포에버’ ‘타임 투킬’ 의 조엘 슈마허 감독. 12세 이상 관람가. 8일 개봉.
〈장원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