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으로]‘궁녀’ 긴장·반전 113분 시선을 사로잡아

입력 : 2007.10.03 22:13

매혹적이다. 2일 드디어 베일을 벗은 영화 ‘궁녀’(감독 김미정, 제작 영화사아침·씨네월드)는 흥미진진하면서 아찔하고 미스터리하면서 그로테스크하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 호러 코드가 도입돼 러닝타임 113분 동안 잠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주인공인 내의녀 천령(박진희)이 희빈 전 궁녀 월령(서영희)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드러나는 궁녀들의 삶은 핏빛 가득한 영상으로 표현됐다. 궁녀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음모와 질투, 살인과 고문은 남자들보다 더 잔혹하기 그지없다. 특히 자신의 다리에 바늘로 글귀를 새기는 장면이나 궁녀들의 군기를 다지는 행사인 ‘쥐불이글려’에 등장하는 참수형 장면은 너무 끔찍해 관객들이 눈을 감게 만든다. 영상물 등급 위원회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은 까닭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정도.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시나리오까지 쓴 김미정 감독은 첫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 있고 개성 넘치는 작품을 내놓았다. 밀폐된 공간인 궁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여자들이 추리해간다는 흥미로운 설정에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혀 오락성과 예술성을 절묘하게 버무렸다. 양파를 까면 깔수록 새로운 속이 드러나듯 사건이 진행될수록 새롭게 드러나는 진실들은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다. 퍼즐을 맞추듯이 영화 속 단서들을 하나씩 맞추다보면 놀라운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반면에 극 진행 방식은 친절하지 않다. 김미정 감독은 관객들에게 일일이 밥을 떠먹여 주지 않는다. 관객들이 직접 적극적으로 추리를 할 것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잠시라도 한눈을 판다면 이야기를 쫓아가기 힘들 수 있다. ‘장화, 홍련’ ‘텔미 썸딩’처럼 관객들이 영화를 본 후 끊임없이 토론하게 만들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박진희는 영화의 화자인 천령 역할을 맡아 영화의 무게축을 확실히 잡아준다. 명석한 두뇌에 강인한 의지를 가진 캐릭터를 맞춤옷을 입은 듯 완벽히 소화해낸다. 이외에 윤세아·서영희·임정은·김성령·김미경 출연진 모두 안정된 연기를 선보인다.

‘궁녀’는 새롭지만 관객들에게 다소 낯선 영화다. 분명히 상업영화 장르인 범죄 수사물이지만 감독의 색깔이 무척 강하다. 몰입하기 힘든 관객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영화 관객들이 올가을 흥미로우면서도 개성이 강한 ‘궁녀’를 과연 지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재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