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으로]‘극락도 살인사건’](http://images.khan.co.kr/article/2007/04/04/7d0592e.jpg)
한 영화에서 감독의 개성과 오락성을 완벽하게 조화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아무것도 잡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박해일·박솔미 주연의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감독 김한민, 제작 두엔터테인먼트)은 근래 보기 드물게 감독의 연출 색깔과 극적 재미를 모두 갖춘 수작이다.
이 영화는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삼고 박해일이 주연을 맡아 제작 전부터 ‘살인의 추억’과 종종 비교됐지만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살인의 추억’처럼 생활의 냄새 물씬 나는 스릴러가 아니라 ‘미스터리 추리극’이란 장르에 맞게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을 연상케 한다.
각본까지 쓴 김한민 감독은 한정된 공간에서 등장 인물 모두를 용의자로 만들어 관객들이 끊임없이 두뇌싸움을 하게 만든다.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을 그린 점에서 ‘살인의 추억’보다는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가 연상된다.
영화는 한 낚시꾼이 바다에서 사람의 머리를 건져올리면서 시작된다. 머리의 주인이 인근 섬인 극락도 주민인 걸로 판명되자 경찰은 수사대를 급파한다. 하지만 섬 주민 17명은 온데간데없고 한 구의 시체도 찾아내지 못한다. ‘이섬에 들여오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여왔다’는 쪽지를 이장이 발견하면서 경찰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육지에서 온 엘리트 보건소장 제우성(박해일)을 중심으로 서로 아껴주며 행복하게 살아온 섬주민들에게 마을 최고참 김노인(김인문)의 칠순 잔치 다음날부터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마을 송전소 공사를 위해 온 한전 직원 두명이 참혹하게 살해당하면서 연쇄살인의 참극이 시작된다. 순박해 보이지만 모두가 약간씩 혐의를 갖고 있는 듯한 섬주민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김한민 감독은 신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 연출력을 선보인다. 내러티브가 정교하게 짜인 기존의 추리극과 달리 극 흐름이 약간 거칠다. 하지만 호러 코드를 도입해 러닝 타임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이 기존의 추리극 마니아들에게는 반감을 느끼게 할 듯하다. 그러나 영화적 재미는 확실히 담보한다. 마지막 반전도 매력적이다. 어찌 보면 무척 황당할 수 있지만 안정된 연출로 나름대로 설득력 있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박해일은 특유의 알듯 모를 듯한 미스터리한 매력으로 러닝타임 내내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특히 어수룩해 보이지만 광기가 언뜻 엿보이는 성지루의 연기는 압권이다. 최주봉·박원상·유혜정 등 조연배우들도 우발적으로 계속 일어나는 살인이 결코 어색해보이지 않게 만든다.
한마디로 ‘극락도 살인사건’은 오랜만에 관객들에게 지적 쾌감을 안겨줄 작품이다.
〈최재욱기자 jwch6@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