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으로] 해변의 여인, 사랑과 욕망사이 ‘유쾌한 줄다리기’

입력 : 2006.08.31 21:35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속마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지식인 캐릭터들은 고고한 척하지만 속마음은 한결같다. 성적 본능에 지극히 충실하다.

홍감독의 일곱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의 주인공인 영화감독 중래(김승우)도 지극히 속물적인 인물이다. 쌍춘절 봄날 해변으로 미술감독 창욱(김태우)과 놀러온 그는 함께 온 창욱의 애인 문숙(고현정)에게 필이 꽂힌다. 각종 감언이설로 창욱을 따돌리고 문숙과 잠자리까지 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볼 일을 다 봤다는 듯 마음이 바뀌고 곧장 유부녀 선희(송선미)에게 눈길을 돌린다.

고현정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은 ‘해변의 여인’은 홍감독의 기존 영화 스타일과 다르다. 시니컬한 면이 줄어들고 한층 밝아졌다. 인간의 기저심리를 까발리는 것은 여전하나 추악하기보다 연민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결말 부분에서는 희망까지 느낄 수 있다.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은 홍감독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까지 홍감독의 영화를 보기에 불편해 했던 이들도 즐겁게 웃으면서 볼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다.

관객과 교감할 수 있게 만든 데는 네 배우, 김승우·고현정·김태우·송선미의 공이 크다. 이들은 베테랑 연기자들답게 무르익은 연기력을 선보인다. 특히 고현정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압권이다. 남자의 변심에 망가지는 모습에서 홍감독만큼 팬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은 그의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 김승우의 능글맞은 바람둥이 연기도 돋보인다. 위선적이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홍감독과 배우들의 노력이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최재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