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으로]‘이브닝’, 사랑앞에 시간도 멈췄다](http://images.khan.co.kr/article/2007/11/21/7k2296b.jpg)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사랑이 찾아온다. 그러나 사랑은 예고 없이 어느날 갑자기 불쑥 찾아오는 법. 적절한 시간이나 알맞은 환경에 상관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놓치기 십상이다. 다음 사랑이 찾아온다고 해도 놓쳐 버린 사랑은 추억이 돼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잡는다. 시간이 지나도 설●던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가끔씩 “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수전 미놋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브닝’은 첫눈에 반한 사랑을 무려 50년 동안 가슴속에서 담아온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순간에 내린 결정과 선택이 남은 삶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영화는 죽음을 앞둔 노부인 앤(바네사 레드그레이브)과 젊은 시절 사랑을 회고하면서 시작된다. 유쾌하고 발랄한 성격의 24살 앤(클레어 데인즈)은 단짝 친구 라일라(마미 검머)의 결혼식의 들러리를 서기 위해 영국 뉴포트를 방문한다. 앤은 라일라가 예비신랑이 아닌 의사 해리스(패트릭 윌슨)와 9년 동안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이라도 도망치라”고 충고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해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절친한 친구가 결혼식을 앞두고 겪는 고민을 들으면서도 이 고민의 상대와 사랑에 빠져드는 모순을 겪게 된 것이다. 앤을 흠모하는 라일라의 동생 버디(휴 댄시)는 앤이 해리스와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네 남녀는 각자 자신의 사랑이 운명이라고 믿지만 인생의 아이러니 때문에 그 사랑을 떠나보내게 된다.
‘이브닝’은 로맨틱한 설정과 전개로만 이뤄진 일반적인 할리우드 멜로영화는 아니다. 아름다운 화면과 서정적인 연출 속에서 젊은 네 남녀가 사랑에 빠져들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보다 이 영화는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좀더 솔직하고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노년의 앤이 세상을 떠나기 전 두 딸에게 전하는 인생의 진실은 자못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의 백미는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이다.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메릴 스트립·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글렌 클로즈·토니 콜렛·클레어 데인즈 등의 연기 호흡은 완벽하다. 이중 세상을 떠나기 전 젊은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연기는 압권이다.
‘이브닝’은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문학의 깊이가 영상 속에서 완벽히 살아 있는 고품격 멜로영화다.
〈최재욱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