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저주로 하루아침에 90살 노파가 된 18살 소녀 소피. 저주를 풀기 위해 마법사 하울을 찾아나선다. 하울은 움직이는 성의 주인. 막무가내로 성안으로 들어간 소피와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하울은 밤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다.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지만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하울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는 소피. 소피로 인해 하울의 숨겨진 사연이 하나 둘 벗겨지고 두 사람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합일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동안 지켜오던 메시지와 새로운 시도가 변주된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 감독은 반전과 자연친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이번에도 차용하고 있다. 2D 애니메이션이 주는 한 폭의 수채화같은 배경이나 주변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어 극 전체에 활기를 띠게 하는 구도 설정도 여전하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역시 기존 작품에서 익숙하게 봐 왔던 그만의 세계. 반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점과 원작 소설이 있다는 점은 확연히 다르다. 그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일본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자국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염두에 뒀다는 설명이 된다.
안개 속에서 거대한 고철덩어리가 움직이면서 문을 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 어떤 작품보다 질감이 풍부하고 색의 조화가 뛰어나다. 중세 유럽을 모델로 한 마을과 대자연의 풍광을 안은 듯한 호수와 만년설의 배경은 꿈결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람에 일렁이는 머리카락과 동선을 따라 바뀌는 그림자의 세밀한 부분까지 채색할 정도로 꼼꼼한 장인정신은 이번 작품에서도 예외없이 빛을 발한다.
그러면서도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 ‘움직이는 마법의 성’이다. 가냘픈 네 개의 다리, 검은 연기를 쉴새없이 내뿜는 굴뚝, 눈과 입까지 가진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잡동사니 덩어리인 성은 상상력의 극한, 판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먼지투성이인 성은 사실 없는 게 없는 색다른 마법의 공간이다. 움직이는 성 자체가 다른 세상과 소통의 공간이 되고 여유를 잃은 자들을 위한 안식처가 된다. 여기에서만큼은 질시와 미움도 없는 평화와 사랑의 장소인 셈이다. 하야오 감독의 상상력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어릴 적 꿈이 비행사였다는 감독의 바람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번에도 바람을 가르면서 하늘을 마음껏 비행하는 장면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불꽃 악마 캘시퍼, 마르클, 힌, 무대가리 허수아비 등 주변 캐릭터가 재미를 선사하는 방식도 똑 같다. 23일 개봉. 전체관람가.
〈장원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