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으로]‘어웨이프롬허’ 찡하게… 外

입력 : 2008.03.27 21:29 수정 : 2008.03.27 21:35

이번 주말 극장가에는 뚜렷한 대작은 없지만 완성도와 재미를 겸비한 영화들이 대거 개봉된다. 그중 여성감독판 ‘바람난 가족’으로 부를 수 있는 저예산 영화 ‘동거, 동락’과 원로배우 줄리 크리스티의 연기가 진한 감동을 줄 ‘어웨이프롬허’, 스릴러 영화의 묘미를 느끼게 할 ‘어웨이크’가 가장 눈에 띈다.

#‘어웨이프롬허’ 찡하게…

많은 사람들이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배우는 마감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가끔씩 소름끼치도록 뛰어난 연기 때문에 그 말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올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작 ‘어웨이프롬허’에서 줄리 크리스티가 보여준 연기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영화는 치매에 걸린 아내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과 그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남편의 러브스토리를 그린다.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와 오브리(마이클 머피)는 44년을 해로한 잉꼬 커플이다. 그러나 어느날 피오나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와인’이라는 단어도 기억해내지 못해 쩔쩔 매던 피오나는 요양원행을 결심한다. 오브리는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내를 보내주고 요양원의 규칙에 따라 한달 후 설렌 마음으로 피오나를 찾아간다. 하지만 오브리는 그녀가 자신까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한다.

노인들의 사랑을 그리지만 그 어떤 러브스토리보다 아름답고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줄리 크리스티는 평생을 쌓아온 사랑의 기억을 잃어가는 여인의 불안함과 새로운 사랑에 떨리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요즘 영화답지 않게 너무 잔잔하지만 보는 내내 인생과 추억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케 한다.

# 동거, 동락 쿨하게…

쿨하고 짜릿하다. 신인인 김태희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현대사회에서 해체된 가족의 단면을 보여준다. 개성이 철철 넘치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대사들이 솔직하다 못해 원색적이다. 세기말의 가족 형태를 보는 듯하다. 데뷔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김태희 감독의 깊은 내공에 충무로에 걸출한 여성감독 한명이 탄생했음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정임(김청)과 유진(조윤희)은 기존 어떤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모녀관계를 보여준다. 자신만 남자친구 병석(김동욱)과 섹스를 즐기는 게 미안해 어머니 정임에게 생일선물로 자위기구를 선물하는 딸 유진. 정임은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고마워하고 친구와 호스트바에 놀러갔다가 거기서 아르바이트하는 병석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병석은 정임과 연인이었던 승록의 아들. 정임은 우연히 다시 만난 승록과도 잠자리를 갖게 된다.

극적으로 엮이고 엮인 주인공들의 관계는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허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말부에 감독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이라는 사실을 주지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 더욱 뇌리에 남는다. ‘동거, 동락’은 올해 상반기 극장가에 나온 의외의 수확이다.

#‘어웨이크’ 섬뜩하게…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청춘스타’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제시카 알바가 주연을 맡은 ‘어웨이크’는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개봉된 ‘리턴’과 마찬가지로 ‘마취 중 각성’을 소재로 눈길을 끄는 영화다. ‘마취 중 각성’이라는 환자가 수술 도중 전신 마취가 풀리면서 육체는 움직일 수 없으나 신경세포가 고통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리턴’이 어린 시절 ‘수술 중 각성’을 겪은 남성의 복수극을 그렸다면 ‘어웨이크’는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을 그린다. 거액의 유산을 상속한 억만장자 클레이(헤이든 크리스텐슨)는 결혼 문제로 집안과 사이가 틀어진 어머니가 추천한 유명 의사를 거부하고 의료소송에 얽혀 있는 친구 잭에게 자신의 심장 이식 수술을 맡긴다.

수술 도중 ‘마취 중 각성’을 일으킨 클레이는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인물들이 수술실에서 자신을 죽이고 유산을 나눠 가질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반전을 거듭한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보통 스릴러보다 비교적 짧은 84분이다. 그러나 구성과 연출이 워낙 탄탄해 그 사실을 눈치채기 쉽지 않다. 잠시 한눈을 팔면 스토리를 쫓기 힘들 정도로 내러티브가 촘촘히 짜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