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으로]싸움, 한국판 ‘장미의 전쟁’ 재미 쏠쏠](http://images.khan.co.kr/article/2007/12/05/7l0692c.jpg)
옛말에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영화 ‘싸움’(감독 한지승, 제작 시네마서비스)의 주인공 김상민(설경구)과 윤진아(김태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서로 사랑은 하지만 삶을 공유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감정을 털어내는 방식은 무섭다 못해 살벌하다.
극장 추격신, 남자를 향한 도사견들의 공격, 도로 위에 난폭한 추격전, 쇠파이프를 들고 쫓아오는 여자를 쟁기로 막는 남자의 모습은 관객들을 경악게 한다. 비슷한 소재를 영화화한 ‘장미의 전쟁’ ‘미스터&미세스 스미스’보다 강도가 약하지 않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남 싸움 구경하는 것’이라는 말을 증명해주듯 묘한 카타르시스와 재미를 느끼게 한다.
영화는 소심하다 못해 편집광적인 기질을 가진 곤충학 교수 상민과 인형 같은 외모에 털털한 성격을 지닌 유리공예가 진아가 오해를 풀고 사랑을 맺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2년을 못 간다. 항상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여자와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는 남자는 끝없이 싸우다 결국 결별을 선택한다. 쿨하게 모든 걸 반반씩 나누고 헤어지기로 합의한 두 사람. 그러나 남자가 갑자기 여자가 가져간 시계추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해 전쟁이 벌어진다.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이혼한 남녀의 미묘한 심리 역학 관계를 포착했던 한지승 감독은 ‘싸움’에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헤어진 부부가 극한 대립을 통해 감정을 털어내고 말 그대로 ‘쿨하게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쌓이고 쌓인 감정의 편린들을 청산하는 과정이 설명적인 게 다소 아쉽지만 심심할 때만 되면 시작되는 화끈한 부부싸움에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쉽지 않다.
화제를 모았던 두 주연 배우의 연기는 평균점 이상이다. 특히 파격 변신을 한 김태희는 기대 이상의 연기를 선보인다. 손에 쥐면 부서질 것만 같은 도자기 인형의 이미지를 벗고 데뷔 후 최초로 살아 숨쉬는 동시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리되지 못한 애증의 감정을 공감이 갈 만큼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아직 대사 처리에서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악에 받쳐 소리 지르는 장면에서는 대사가 제대로 귀에 들리지 않는다. 후시 녹음을 통해서라도 수정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설경구는 기대대로 지극히 이기적이어서 얄밉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남성을 능청스럽게 형상화낸다. 그러나 멜로 연기에 있어서는 좀 아쉬움이 든다. 미묘한 감정을 나누는 장면에서 서로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든다. 13살이라는 세대차 때문에 캐스팅부터 우려됐던 일인데 이런 부분을 완벽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이런 탓에 ‘연애시대’ 때 느껴졌던 감정의 울림까지는 주지 못한다. 그냥 신나는 부부싸움을 구경한 것에 만족해야만 할 듯하다.
〈최재욱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