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 조명에 빛바랜 ‘내관의 삶’
SBS 드라마 ‘왕과 나’가 1일 63회를 끝으로 종영됐다. 7개월간의 대장정은 연산군에게 충언하는 김처선(오만석)과 연산군(정태우), 장녹수(오수빈) 등이 숨을 거두면서 마무리됐다. 지난해 8월 내관의 삶을 본격적으로 조명하겠다는 의도로 방송을 시작한 ‘왕과 나’는 최근 드라마 중에서 단연 굴곡진 여정을 걸어왔다. ‘왕과 나’의 이러한 행보는 현재 한국 드라마의 서글픈 초상이자 도약의 실마리였다.
![[TView]막내린 SBS ‘왕과 나’](http://images.khan.co.kr/article/2008/04/01/20080402.02500102000005.01M.jpg)
초반 ‘왕과 나’는 궁중내관이 되는 양물거세 장면을 보여주는 등의 이슈와 유승호·박보영·주민수 등 아역들의 호연에 힘입어 시청률이 30%를 웃돌았다. 이러한 호응은 ‘용의 눈물’ ‘여인천하’ 등의 사극에서 걸출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김재형 감독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방송을 시작한 이병훈 감독의 MBC 드라마 ‘이산’과 경쟁구도도 생겨나 본격적인 사극의 전성시대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왕과 나’는 내관의 삶을 보이겠다는 초반 의도와 달리 인수대비(전인화)와 소화(구혜선)의 대립, 조치겸(전광렬)을 중심으로 한 내시부 암투로 극이 집중됐다. 시청자의 기대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극은 시청률이 10% 초반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김재형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고, 쪽대본에 대한 언쟁 끝에 전인화의 남편 유동근이 두 명의 PD를 폭행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이후 이종수 감독이 투입돼 복잡한 인물관계를 정리하고 연산군을 중심으로 극의 긴장을 높여 10% 후반의 시청률로 다시 올라섰으나 시청자들의 냉소는 그치지 않았다. “김처선과 조치겸이 중심인 시즌1과 연산군이 중심인 시즌2로 나눠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사극이 매력 있는 아이템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방송사들이 대형사극을 속속 준비한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작품을 이끄는 ‘운용의 묘’가 없으면 좋은 기획도 빛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왕과 나’는 보여줬다. ‘왕과 나’가 거쳤던 영욕은 2008년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현재를 되묻는 긴 여운을 가진 물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