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iew]김수현표 드라마가 좋은 몇가지 이유](http://images.khan.co.kr/article/2008/09/19/20080920.02500102000009.02L.jpg)
KBS 주말극 ‘엄마가 뿔났다’의 시청자와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김수현의 힘’을 얘기한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작가 김수현의 시청률 파워는 안방극장에서 이미 뉴스가 아니다. 지난 십수년간 그는 안방극장의 맹주로서 위치를 굳건히 해왔기 때문이다.
‘엄뿔’에서도 그의 마술은 계속된다. 죽어있던(?) 장미희를 부활시켰고, 김혜자를 통해 주부 안식년 논란을 불러왔다. 이순재와 전양자의 알콩달콩한 노년의 사랑을 그려 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김수현의 드라마가 깊어지고, 넓어졌다는 점이다. 왕년의 히트작에서 김수현은 늘 ‘가부장적 사회’와의 불화를 겪어왔다. 남자는 뭔가 한 구석이 모자라고 한심하기까지한 인간군상으로 묘사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남성을 쉴새없이 몰아붙이는 따따부따형 여성캐릭터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엄뿔’에서 그런 캐릭터나 대사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 대신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볼 줄 아는 중견작가의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의 시선에서 바라본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외롭고 쓸쓸한 존재들이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다가 황혼녘에 사랑에 빠지지만 자식 눈치보는 이순재(나충복), 평생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다가 독립을 선언하는 전업주부 김혜자(한자), 바람난 남편에 버림받고 딸자식 키우면서 외롭게 살아가는 강부자(나이석) 등. 심지어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귀부인 장미희(고은아)와, 이혼한 부모 밑에서 갈등을 겪는 딸 조수민(소라)까지도 쓸쓸하다. 그 때문인지 드라마에서 유난히 혼자 꺼억꺼억 우는 캐릭터가 많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작가 김수현은 긍정의 힘으로 인간이라는 한없이 초라한 존재들을 보듬어 안는다. 인생의 8할이 눈물과 한숨이라는 걸 아는 작가는 사는 일이 늘 즐겁고 행복한 게 아니라 모두가 상처투성이라고 말한다. 시청자들은 그런 시선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을 자신에게 치환시키면서 어느새 위로 받는다. 서른이 다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봤던 김지유(은실)의 좌충우돌하는 연애담은 얼마나 신선하고 리얼한가.
트렌디드라마가 안방극장을 휩쓸면서 정통드라마는 한물간 형식으로 치부되는 게 요즘의 세태다. 그러나 김수현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방송사들도 한번쯤 되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오광수 문화연예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