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주말극 ‘엄마가 뿔났다’는 핑크빛 염문(?)으로 가득하다. 극중 칠순이 넘은 이순재-전양자 커플이 알콩달콩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다. 칠순노인 이순재가 거울 앞에서 빨간 셔츠를 입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고민하는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다. 전양자는 곱게 늙어 사랑에 빠진 사랑스러운 할머니 역을 능숙하게 소화해 낸다. 정말 밉지 않은 스캔들이다.
이순재-전양자 커플
농익은 두 연기자의 호흡은 절정이다. 30년간 바람 한번 피우지 않았던 남편 김용건의 외도를 의심하여 뺨을 후려치는 장미희의 표독스러움 또한 또 다른 볼거리다. 오죽 리얼했으면 장미희의 오버액션에 시청자들이 들끓었겠는가.
SBS 주말극 ‘행복합니다’에서도 로맨스 그레이는 계속된다. 상처 이후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온 이계인은 권기선을 아내로 맞아 사랑을 불태운다. 두 사람이 와인을 한잔 하면서 블루스를 추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이 밖에도 MBC 주말극 ‘천하일색 박정금’에서 박정금을 놓고 손창민과 김민종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나도 나만 걱정해주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갈 테면 가라”며 배종옥에게 절규하는 손창민의 연기는 처절하기까지 했다.
드라마 속에서 중년과 노년의 사랑이 꽃 피고 있지만 풋풋한 20대 사랑은 실종된 지 오래다. 대신 그들은 오락 프로그램의 한가운데서 짝짓기에 여념이 없다. 가상 스타부부를 내세워 신혼생활을 체험(MBC, 우리 결혼했어요)하게 하고, 스타가 친구를 데리고 나와 소개팅(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을 하기도 한다. 젊은 시청자들은 그들의 가상놀이에 열광한다. 그러나 그들의 가상놀이에서 진정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시청자들도 TV 앞에서 그들의 가상놀이에 빠져들지만 단지 그뿐이다.
로맨스 그레이를 그린 드라마나 짝짓기 프로그램이 가상공간의 얘기인 점은 똑같다. 그러나 전자에게서는 진정성의 힘이 느껴지고, 후자에서는 단순한 오락으로 치부되는 건 왜일까. 혹 젊은층들이 빠져 있는 디지털세계가 그들에게 있어 사랑마저도 놀이로 전락시켜버린 건 아닐까. ‘러브스토리’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소설들이 새로운 세대의 스테디셀러 목록에서 퇴출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20대의 특권인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 그 빛을 잃어가는 건 서글픈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영상매체가 지켜줘야 할 때다. 사랑을 함부로 팔지 말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