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듯 수천만원짜리 명품쇼핑
서민 시청자 공감 대신 ‘공분’만
1000원이던 김밥 한 줄이 1500원으로 오르고 라면값도 15%가 치솟았다. 고환율에 고유가 때문에 서민들은 허리띠를 바싹 조여 맸는데 드라마 속 재벌들만 별천지에 살고 있다.
SBS 드라마 ‘행복합니다’의 한 장면.
KBS2 ‘태양의 여자’에서 대학교수로 나오는 최정희(정애리)는 현주(이유정)가 20년 전에 잃어버렸던 딸인 줄 안다. 친딸을 찾은 기쁨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은 명품 의상과 가방으로 보상해준다. 백화점에 데려가 수백만원은 족히 넘을 듯한 초고가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사준다. 스무 살 생일 선물로 사둔 거라면서 1200만원짜리 시계도 준다. 88만원 세대의 1년 연봉도 넘는 액수를 손목에 채워준 셈이다. 윤사월(이하나)이 일하는 백화점 명품관은 전체가 별천지다. 기업 회장 부인, 교수 부인 등 VIP 고객들만 모아두고 호화스러운 명품 브랜드 패션쇼를 연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그들만의 잔치다.
SBS ‘행복합니다’의 박회장네도 별천지에 산다. 박회장의 부인 이세영(이휘향)과 며느리 하경은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거나 쇼핑하는 게 일과다. 기업 계열사 호텔에 공식 직함이 있지만 쇼핑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나온다. 딸 서윤이가 결혼할 때 유명 디자이너의 웨딩드레스를 고르면서 좋아한 건 당사자 서윤이가 아니라 이 두 사람이었다.
가출했던 애다(이은성)가 집에 돌아오자 백화점에서 호화스러운 원피스를 사주면서 위로한다. 대학생인데 저런 옷을 어디 입고 갈까 궁금할 만큼 화려하다. 고유가 때문에 자가용 대신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서민들은 없다. 대학생 딸 애다를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에 태워서 등·하교를 시킨다.
재벌가는 아니지만 MBC ‘달콤한 인생’의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하동원(정보석)도 불황을 모른다. 그는 우울해 하는 아내에게 “나가서 쇼핑이나 좀 하라”며 신용카드를 내민다. 그리고 내연녀 홍다애(박시연)에게는 시가 4500만원에 달하는 외제 쿠페를 선물한다. 매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비싼 선물을 주고 환심을 산다. 회사 후배와는 ‘큰 거 한 장’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별다른 직업도 없이 무위도식하고 있는 이준수(이동욱)도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써대기는 마찬가지다.
드라마 속 재벌의 모습이 진짜 재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재벌들의 소비 행태를 비난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웃고 우는 시청자들의 대부분이 서민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라는 건가. 절대 다수 시청자인 서민들의 공감이 아닌 공분을 산다면 그 드라마는 실패한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