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신드롬’ 발맞춘 맛깔난 연출력 박수
우왕좌왕 막방 편성 안방팬 호평도 반감
용두사미가 됐다. 적어도 시청률이 아니라 드라마적 가치에선 그렇다.
애당초 드라마 ‘이산’에 대한 시청자와 방송 관계자의 평가는 상한가였다. 동시간대 ‘이산’과 ‘맞짱’을 뜬 드라마는 예측대로 초토화가 됐다. 그러나 이같은 평가는 ‘이산’에 독(毒)이 됐다. 대단원에 가까워질수록, 드라마는 제대로 파국을 맞았다. 국정의 원칙을 지키며 개혁을 이루고자 한 ‘이산’은, 편성의 원칙을 무시하며 개악을 일삼은 MBC 편성 관계자의 ‘장난질’로 시청자의 비난을 받았다.
그래도 연출자 이병훈 감독에 대한 평가는 반감되지 않았다. 이감독은 ‘이산’이란 인물을 개혁 시대의 완결편으로 준비한 인상이다. 지난해부터 ‘정조’는 트렌드였다. 대통령 선거라는 이벤트와 맞물려 문화계는 ‘정조’ 재조명에 열을 올렸다. 방송에서는 드라마 ‘이산’과 더불어, KBS2 ‘한성별곡-正’, 채널CGV ‘8일’ 등이 전파를 탔다. 이 과정에서 이병훈 감독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타’처럼 ‘이산’을 정조 신드롬의 대미로 포지셔닝한 인상이다.
철저한 준비로 드라마는 화제를 모았고, 연출력은 박수를 받았다. 시청률도 꼬리를 물며 상승일로를 달렸다. 오래지 않아 ‘이산’에 대한 연장 논의가 솔솔 피어올랐다. 그때 용인 문화동산에서 만난 이병훈 감독은 “작품의 긴장도를 해치지 않을 정도의 에피소드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말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결국 홍국영은 정약용에게 바통을 내주며, 드라마의 인기를 이어갔다. 임기응변이라기보다 이미 체계적인 상황대처 메뉴얼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편성이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도 이병훈 감독에 대한 찬사가 그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다 만들어놓은 잔칫상은 이방 저방으로 옮겨지길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맛깔스러운 음식은 식어버렸고, 들고 나르는 통에 먼지가 쌓여 산해진미의 선도는 떨어졌다. 숟가락을 들고 잔칫상을 좇으며 눈치만 보던 객(客)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기보다, “소문난 잔치, 먹을 ‘수’ 없었다!”라는…. 역사적으로는 정조의 죽음에 의문이 많지만, 드라마 ‘이산’은 막방 편성이 그를 죽인 게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