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음악프로’ 보루 무너진 듯…
![[TView]‘이하나의 페퍼민트’ 유감](http://images.khan.co.kr/article/2008/11/10/20081111.02500102000001.03L.jpg)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폐지되면서 윤도현이라는 이름이 마침내 지워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하차는 ‘정권교체’가 빌미가 됐다. 윤도현이나 KBS가 아니라고 우겨도, 온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대신 탤런트 겸 배우 이하나가 그 자리를 채웠다. 프로그램 제목도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바뀐다. 새 진행자인 이하나에게 딴죽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지난 십수년을 지켜온 성깔 있는 음악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마침내 무너진 것 같아 아쉽고, 아쉽다.
그동안 KBS는 1991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작으로 ‘이문세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명맥을 이어왔다. 피아노를 치면서 잔잔한 진행을 했던 노영심이나, 걸쭉한 입담과 재치로 쇼를 이끌었던 이문세는 KBS의 음악상품에 초석을 세운 진행자였다. 여기에 어눌한 말솜씨로 심야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이소라와 살아있는 음악정신을 프로그램에 구현한 윤도현은 자타가 공인하는 음악전문 프로그램의 아이콘이었다.
이들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가수에게 ‘꿈의 무대’였다. 마치 인순이에게 예술의전당이 ‘꿈의 무대’이듯이 말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실력있는 뮤지션들의 등용문이었다. 무늬만 가수라면 아예 프로그램에 명함 내밀기가 힘들었다. 탁월한 가창력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야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었다. 수백만장의 앨범을 판 그룹이나 가수도 음악성보다 상업성을 앞세웠다면 프로그램 출연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각 방송의 순위프로그램은 아이돌그룹의 전유물이었고, 한때 유행하던 7080콘서트가 왕년에 잘나가던 가수들의 컴백무대였다면 노영심,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으로 이어진 이 음악프로그램은 당대 최고 뮤지션들의 치열한 경합무대였다. 물론 이 프로그램도 한 시절 매너리즘에 빠져 열혈 시청자들을 실망시킨 적도 있다. 그 이면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부 프로듀서들의 사심이 숨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음악적인 판단이 아닌, 다른 판단에 의해 출연진을 골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수 이름을 내건 KBS의 음악프로그램은 18년 만에 막을 내렸다. ‘정권교체’를 이룬 것이다. 제작진들은 진행자와 프로그램 제목이 바뀌었을 뿐 품격 높은 대중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명맥은 유지할 것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 기대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이었다면 새 진행자의 선정에 좀더 신중했어야 했다.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를 폐지하고 ‘시사터치, 오늘’과 ‘미디어비평’으로 간판을 바꾼 데 대해 현업 제작진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건 프로그램 이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수상한 2008년 초겨울, KBS 개편은 아무래도 공영방송의 역사에 기록될 듯하다.
<문화연예부장 오광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