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은 감수성이 풍부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초가을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가 대세다.
시청자들은 극의 치밀한 구성이나 다양성보다는 주인공들의 감성의 진폭에 따라 드라마를 선택한다. 잘 짜여진 일본 드라마보다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면에는 우리 시청자들의 감성적 취향이 숨어 있다. 그래서인지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는 아침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가 항상 시청률 상위권에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좀더 감각적인 면을 부각하는 트렌디 드라마는 화제는 될 수 있으나 삶의 명제는 될 수 없다.
그런데 감정의 과잉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할 때도 있다. 시청자를 울리기 전에 배우들이 벌써 눈물, 콧물범벅이 돼 있으면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없다. 때로는 시청자의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스토리가 비약되어 당혹스러운 경우도 있다.
MBC ‘에덴의 동쪽’은 한 형제를 둘러싼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다뤘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극 초반 여의었고, 그 배후에는 원수가 있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갖가지 고초를 겪는다. 그때마다 그들의 얼굴은 절규로 일그러지고, 주먹은 굳게 쥐어진다. 물론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지만 감정이 신파로 흐르면 곤란하다.
SBS ‘조강지처클럽’이나 최근의 아침 드라마를 봐도 감정의 과잉은 도를 넘는다. 극중 캐릭터들은 쌓아온 응어리를 표정보다도 말로, 말보다는 행동으로 푼다.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울고 불고, 때로는 패대기 치고, 버럭버럭 악을 쓴다.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통해 감동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지난 6월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린 동아시아방송작가 컨퍼런스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정샤오룽 감독의 ‘금혼’이었다. 중국 개혁개방시대의 파고를 넘어온 한 노년의 부부가 자녀들과의 갈등으로 받는 상처를 다뤘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대처방식은 우리네의 그것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조용하고 차분해 의외성을 느낀 적이 있다. 수시로 화내고, 고함치고, 절규하는 우리네 드라마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감정의 과잉은 시청자를 극에 빨리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시청자를 밀어내는 독소로 작용한다. 극중 주인공들보다 시청자가 먼저 기쁨과 슬픔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는 일은, 이제 대한민국 드라마에선 정말 불가능한 일이 된 것일까.
